다. 교통여건의 편리
청호동은 1951년 8월, 1군단이 청호동 9~10통 자리에 들어서기 전 오래 전부터 양양에서 속초 시내나 고성 쪽으로 가는 육지 지름길로 이용되었다. 청호동 북단에서 현재 중앙동까지의 폭은 100m도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물이 얕아 거의 육로였다. 그런데 일제가 1930년 무렵 배가 입항할 수 있도록 청초호 개발을 한 후, 바다에 맞닿은 호단이 깊어져 갯배를 띄울 수 있게 되었다. 일제 시대 때의 갯배는 현 갯배보다 커서 우마차나 소형 버스를 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7번 국도의 전신인 청초호 우회도로는 1939년에 착공하여 1940년에 준공되었다. 속초 주민들은 교통이 최근처럼 발달하기 전에는 속초시내와 조양동이나 양양 방면을 왕래할 경우에는 갯배를 이용하고 청호동을 걸어다니는 일이 다반사였다.2)
이러한 교통의 편리성은 속초와의 왕래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하게 되어, 갯배를 이용하여 쉽게 시내에 진출하여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였다.
즉 편리한 교통여건은 계속적으로 정착인이 고착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였으며, 속초의 발전에 따라 더욱 많은 일자리를 정착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되어, 청호동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게 하였다.
이러한 교통의 편리성은 청호동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있는 것으로써, 주거환경은 규모와 자재의 종류, 화려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질적인 우수성에 의해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고 할 때 거주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교통의 편리성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즉 현재의 상황에서 가로정비, 생활환경개선, 부분개조 등을 통하여 우수한 주거환경을 갖춘 촌락으로 발전할 수 있다.
2) 박익훈, 1966.김정우, 1977
다. 교통여건의 편리
청호동은 1951년 8월, 1군단이 청호동 9~10통 자리에 들어서기 전 오래 전부터 양양에서 속초 시내나 고성 쪽으로 가는 육지 지름길로 이용되었다. 청호동 북단에서 현재 중앙동까지의 폭은 100m도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물이 얕아 거의 육로였다. 그런데 일제가 1930년 무렵 배가 입항할 수 있도록 청초호 개발을 한 후, 바다에 맞닿은 호단이 깊어져 갯배를 띄울 수 있게 되었다. 일제 시대 때의 갯배는 현 갯배보다 커서 우마차나 소형 버스를 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7번 국도의 전신인 청초호 우회도로는 1939년에 착공하여 1940년에 준공되었다. 속초 주민들은 교통이 최근처럼 발달하기 전에는 속초시내와 조양동이나 양양 방면을 왕래할 경우에는 갯배를 이용하고 청호동을 걸어다니는 일이 다반사였다.2)
이러한 교통의 편리성은 속초와의 왕래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하게 되어, 갯배를 이용하여 쉽게 시내에 진출하여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였다.
즉 편리한 교통여건은 계속적으로 정착인이 고착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였으며, 속초의 발전에 따라 더욱 많은 일자리를 정착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되어, 청호동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게 하였다.
이러한 교통의 편리성은 청호동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있는 것으로써, 주거환경은 규모와 자재의 종류, 화려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질적인 우수성에 의해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고 할 때 거주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교통의 편리성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즉 현재의 상황에서 가로정비, 생활환경개선, 부분개조 등을 통하여 우수한 주거환경을 갖춘 촌락으로 발전할 수 있다.
2) 박익훈, 1966.김정우,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