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 어항

< 표 8-5-2 > 속초읍내 구역의 농어민 분포(1955년 현재) (단위:호, 명)
속초는 1930년부터 어업이 활성화되었으며, 1955년 월남인 중 어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들어오게 되면서 비로소 농업보다 어업인구가 많아지게 되었다. 즉 농토는 원주민들이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토지의 확보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며, 이에 따라 조업이 가능한 어항이 있는 고향 가까운 곳으로 월남인이 많이 모여 오는 것은 당연하다. <표2>의 속초 농어민 분포에서와 같이 청호동은 백사장으로써 속초 1, 2, 3, 4구와 다르게 농업종사 인구가 없는 어촌이었다.

<자료 : 속초읍(1955), 『읍세일람』 >
이러한 여건으로 월남인 중 어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과 원래 어업에 종사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청호동으로 모여오게 되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인근에 군부대가 주둔하여 쉽게 어획물을 팔 수 있었던 경제적 장점도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어촌에 종사하는 많은 인구들은 특별한 가재도구나 어구들이 필요하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크기의 공간이 요구되었다. 또한 조업의 특성상 그들은 육지에서도 함께 생활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므로 단체 생활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것은 각 방에서 개인적 공간을 찾기보다는 기숙사와 같이 큰 방, 혹은 연속된 몇 개의 방들이 있는 곳에서 같은 조업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게 할 수 있는 일렬로 연속된 방, 혹은 큰 규모의 방이 있는 가옥구조를 만들게 하는 한 요소로 작용한다.
☞ 가. 어항
< 표 8-5-2 > 속초읍내 구역의 농어민 분포(1955년 현재) (단위:호, 명)
속초는 1930년부터 어업이 활성화되었으며, 1955년 월남인 중 어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들어오게 되면서 비로소 농업보다 어업인구가 많아지게 되었다. 즉 농토는 원주민들이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토지의 확보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며, 이에 따라 조업이 가능한 어항이 있는 고향 가까운 곳으로 월남인이 많이 모여 오는 것은 당연하다. <표2>의 속초 농어민 분포에서와 같이 청호동은 백사장으로써 속초 1, 2, 3, 4구와 다르게 농업종사 인구가 없는 어촌이었다.
<자료 : 속초읍(1955), 『읍세일람』 >
이러한 여건으로 월남인 중 어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과 원래 어업에 종사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청호동으로 모여오게 되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인근에 군부대가 주둔하여 쉽게 어획물을 팔 수 있었던 경제적 장점도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어촌에 종사하는 많은 인구들은 특별한 가재도구나 어구들이 필요하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크기의 공간이 요구되었다. 또한 조업의 특성상 그들은 육지에서도 함께 생활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므로 단체 생활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것은 각 방에서 개인적 공간을 찾기보다는 기숙사와 같이 큰 방, 혹은 연속된 몇 개의 방들이 있는 곳에서 같은 조업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게 할 수 있는 일렬로 연속된 방, 혹은 큰 규모의 방이 있는 가옥구조를 만들게 하는 한 요소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