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 연결형

전쟁이 곧 끝나고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간이구조로 간단히 평면을 구성하였으나, 점차 세월이 흘러 오랜 기간 정착하면서 주거건축은 또 다른 형태를 만들게 하였다. 청호동 거주민들의 숫자는 점점 증가하였으며, 이에 따라 생활공간은 더욱 많이 필요하였으나 제한된 면적과 경제적 사정에 의해 모두가 주거건축물을 소유할 수는 없었다.
또한 가족을 두고 혼자서 생활하여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함께 거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몇 사람이 모여서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취업생활을 영위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주거건축은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방과 극히 필요한 면적의 부엌만이 전부였다. 즉 낮에는 외부생활을 하고, 밤에는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였으며, 함께 공동작업이 요구되는 어민에게는 단체생활을 위하여 더욱 필요하였다.
다음 < 그림 8-5-2-2 >, < 사진 8-5-2-5 >. < 사진 8-5-2-6 >은 50년 전 건축된 청호동의 박송월 가옥으로써 길게 연결된 각 방과 작은 부엌은 그때의 생활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가옥은 원래 중간의 폭 60cm, 길이 270cm의 부엌과 좌측의 방 3개로 이루어졌다. 방의 크기는 270cm×270cm 정도이며 12~15명의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즉 방 하나에 4~5명이 함께 생활하였다. 이러한 크기는 그 인원이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최소한의 넓이이며, 간이의 손에 잡을 수 있는 간단한 부피의 물건 몇 개를 더 놓을 수 있는 정도이다. 주로 함께 어로작업을 하는 어민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였으며, 그나마 이러한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한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모여오면서 방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측면과 끝에 각각 부엌을 증축하여 지금과 같은 평면이 완성되었다. 주생활에 필요한 화장실, 세면실 등은 공동의 공간을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개인 가정에서는 극히 볼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부엌을 방의 중간 혹은 측면에 두면서 각각의 방이 증가하는 것은 청호동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평면형식이며, 토지공간의 여유와 수요가 있을 때는 3칸, 4칸, 5칸으로 계속 일렬로 증축하였다.
사용하는 재료는 미군들이 버린 판자를 주워서 벽체를 만들었으며, 밀가루 포장지로 내부를 도배하였다. 지붕은 판자, 종이박스, 비닐 포장지, 루핑으로 만들었고, 현재의 스레트는 30년 전 인근 공장에서 사용한 것을 다시 재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정착 초기의 일반적인 것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를 증언하고 있다.3)
일렬로 방들이 배치되고, 이러한 집들이 인근에 붙어있고, 토지소유에 대한 구분과 각 집에 대한 영역성이 표시가 필요 없으므로 자연히 출입구는 각 방의 문을 통하여 외부로 연결되며, 마당의 개념이 필요치 않았다. 즉 사회적인 공간은 실내·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생활에 필요한 출입 통로 공간만 있었다.
3) 장정룡∙김무림,『속초 청호동의 민속과 언어』,속초문화원, 1998, p99.
☞ 다. 연결형
전쟁이 곧 끝나고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간이구조로 간단히 평면을 구성하였으나, 점차 세월이 흘러 오랜 기간 정착하면서 주거건축은 또 다른 형태를 만들게 하였다. 청호동 거주민들의 숫자는 점점 증가하였으며, 이에 따라 생활공간은 더욱 많이 필요하였으나 제한된 면적과 경제적 사정에 의해 모두가 주거건축물을 소유할 수는 없었다.
또한 가족을 두고 혼자서 생활하여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함께 거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몇 사람이 모여서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취업생활을 영위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주거건축은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방과 극히 필요한 면적의 부엌만이 전부였다. 즉 낮에는 외부생활을 하고, 밤에는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였으며, 함께 공동작업이 요구되는 어민에게는 단체생활을 위하여 더욱 필요하였다.
다음 < 그림 8-5-2-2 >, < 사진 8-5-2-5 >. < 사진 8-5-2-6 >은 50년 전 건축된 청호동의 박송월 가옥으로써 길게 연결된 각 방과 작은 부엌은 그때의 생활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가옥은 원래 중간의 폭 60cm, 길이 270cm의 부엌과 좌측의 방 3개로 이루어졌다. 방의 크기는 270cm×270cm 정도이며 12~15명의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즉 방 하나에 4~5명이 함께 생활하였다. 이러한 크기는 그 인원이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최소한의 넓이이며, 간이의 손에 잡을 수 있는 간단한 부피의 물건 몇 개를 더 놓을 수 있는 정도이다. 주로 함께 어로작업을 하는 어민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였으며, 그나마 이러한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한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모여오면서 방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측면과 끝에 각각 부엌을 증축하여 지금과 같은 평면이 완성되었다. 주생활에 필요한 화장실, 세면실 등은 공동의 공간을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개인 가정에서는 극히 볼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부엌을 방의 중간 혹은 측면에 두면서 각각의 방이 증가하는 것은 청호동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평면형식이며, 토지공간의 여유와 수요가 있을 때는 3칸, 4칸, 5칸으로 계속 일렬로 증축하였다.
사용하는 재료는 미군들이 버린 판자를 주워서 벽체를 만들었으며, 밀가루 포장지로 내부를 도배하였다. 지붕은 판자, 종이박스, 비닐 포장지, 루핑으로 만들었고, 현재의 스레트는 30년 전 인근 공장에서 사용한 것을 다시 재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정착 초기의 일반적인 것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를 증언하고 있다.3)
일렬로 방들이 배치되고, 이러한 집들이 인근에 붙어있고, 토지소유에 대한 구분과 각 집에 대한 영역성이 표시가 필요 없으므로 자연히 출입구는 각 방의 문을 통하여 외부로 연결되며, 마당의 개념이 필요치 않았다. 즉 사회적인 공간은 실내·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생활에 필요한 출입 통로 공간만 있었다.
3) 장정룡∙김무림,『속초 청호동의 민속과 언어』,속초문화원, 1998, p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