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동여지도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철종 12)에 제작한 우리나라의 대축적 지도.
대동여지도는 1834년(순조 34)에 김정호 자신이 제작한 <청구도 靑邱圖>를 27년후에 증보 수정한 대축적지도로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 지도첩이다. 우리나라의 남북을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구분하고, 동서를 80리 간격으로 끊어 19판으로 구분했다. 동서방향은 구획된 판을 접어서 연결시켜 1첩으로 만들어 쉽게 볼 수 있도록 했다. 남북은 동서의 방향을 연결시킨 각첩을 펼쳐서 순서대로 이어 대면 연속된 남북을 볼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지도첩의 형식은 넓은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니는 동시에 22층을 펼쳐서 전부 이어 붙이면 우리나라 전도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제1층 첫머리에 그려져 있는 지도 방안(方眼)에 매방십리(每方十里)라고 되어 있어서 간접적으로 축척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의 좌표에 해당하는 이 방안은 지도를 동서로 접은 1면을 남북 12방안, 동서 8방안으로 구분하고 있고, 남북이 120리, 동서는 80리로 되어 있다. 그리고 1면의 실제 길이는 남북이 약 30㎝ , 동서가 약 20㎝ 이 다. 그러므로 동서 20㎝ 가 80리(32㎞ )에 해당되는 축척이므로 <대동여지도>의 축척은 <청구도>와 같이 약 1/160,000이 된다. <대동여지도>를 표구하여 괘도를 만든다면 길이가 약 7m, 폭이 약 3m가 되는 대형지도가 된다. <대동여지도>는 산계(山系)와 수계(水系)를 가장 성공적으로 나타낸 지도이다.
<청구도>에서는 지도 안에 호구∙전결∙군정과 같은 지지적(地誌的)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대동여지도 는 지지적인 내용은 따로 제작한 <대동지지 大東地志>에 미루고 순수한 지도로 남게 했다. 따라서 기술적 인 내용은 가능한 한 부호로 처리했다. 이 부호를 설명한 범례(凡例)를 <대동여지도>에서는 지도표(地圖標) 라고 부르고 있다. 지도표는 14개 항목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22개로 세분하였다.
대동여지도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철종 12)에 제작한 우리나라의 대축적 지도.
대동여지도는 1834년(순조 34)에 김정호 자신이 제작한 <청구도 靑邱圖>를 27년후에 증보 수정한 대축적지도로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 지도첩이다. 우리나라의 남북을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구분하고, 동서를 80리 간격으로 끊어 19판으로 구분했다. 동서방향은 구획된 판을 접어서 연결시켜 1첩으로 만들어 쉽게 볼 수 있도록 했다. 남북은 동서의 방향을 연결시킨 각첩을 펼쳐서 순서대로 이어 대면 연속된 남북을 볼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지도첩의 형식은 넓은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니는 동시에 22층을 펼쳐서 전부 이어 붙이면 우리나라 전도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제1층 첫머리에 그려져 있는 지도 방안(方眼)에 매방십리(每方十里)라고 되어 있어서 간접적으로 축척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의 좌표에 해당하는 이 방안은 지도를 동서로 접은 1면을 남북 12방안, 동서 8방안으로 구분하고 있고, 남북이 120리, 동서는 80리로 되어 있다. 그리고 1면의 실제 길이는 남북이 약 30㎝ , 동서가 약 20㎝ 이 다. 그러므로 동서 20㎝ 가 80리(32㎞ )에 해당되는 축척이므로 <대동여지도>의 축척은 <청구도>와 같이 약 1/160,000이 된다. <대동여지도>를 표구하여 괘도를 만든다면 길이가 약 7m, 폭이 약 3m가 되는 대형지도가 된다. <대동여지도>는 산계(山系)와 수계(水系)를 가장 성공적으로 나타낸 지도이다.
<청구도>에서는 지도 안에 호구∙전결∙군정과 같은 지지적(地誌的)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대동여지도 는 지지적인 내용은 따로 제작한 <대동지지 大東地志>에 미루고 순수한 지도로 남게 했다. 따라서 기술적 인 내용은 가능한 한 부호로 처리했다. 이 부호를 설명한 범례(凡例)를 <대동여지도>에서는 지도표(地圖標) 라고 부르고 있다. 지도표는 14개 항목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22개로 세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