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후기 지방지도『양양읍지도』
고종9년(1872) 작자미상, 채색도 35.1㎝ ×25.3㎝ 현존하는 고지도(古地圖)의 대부분은 조선시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1872년의 지방지도(총461매)는 고종대(高宗代) 병인(丙寅)∙신미(辛未) 두 차례의 양요(洋擾)를 겪은 후,국방을 강화하고 사회∙경제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작되었다.군비를 확충하고 방어 태세를 정비하기 위해 지방의 사정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그리하여 1871년 전국적 차원의 읍지 제작에 뒤이어 이듬해 전국 군현의 지도를 제작∙수합하게 된것이다.
읍치(邑治)의 관청 건물과 각면의 소속 동리와 같은 행정적 요소, 倉庫, 場市, 驛院, 道路와 같은 사회경제적 요소, 祭壇, 樓亭, 書院, 古蹟과 같은 문화적 요소 등이 망라되어 지방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조선후기 지방지도『양양읍지도』
고종9년(1872) 작자미상, 채색도 35.1㎝ ×25.3㎝ 현존하는 고지도(古地圖)의 대부분은 조선시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1872년의 지방지도(총461매)는 고종대(高宗代) 병인(丙寅)∙신미(辛未) 두 차례의 양요(洋擾)를 겪은 후,국방을 강화하고 사회∙경제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작되었다.군비를 확충하고 방어 태세를 정비하기 위해 지방의 사정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그리하여 1871년 전국적 차원의 읍지 제작에 뒤이어 이듬해 전국 군현의 지도를 제작∙수합하게 된것이다.
읍치(邑治)의 관청 건물과 각면의 소속 동리와 같은 행정적 요소, 倉庫, 場市, 驛院, 道路와 같은 사회경제적 요소, 祭壇, 樓亭, 書院, 古蹟과 같은 문화적 요소 등이 망라되어 지방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