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 속의 속초 - 4

관리자
202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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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신흥사(神興寺)에서 놀다 4월 17일

  절 이름은 신흥사로, 흥이 나서 노는데 寺以神興興以遊

  오늘날 옛날을 생각해 봄에 몇 명의 명류가 다녀 갔는가 以今視昔幾名流

  신선 대(臺)의 달 예스러운데 학은 날으고 仙臺月古飛笙鶴

  인자한 바다에 구름 아득한데 배는 떠있구나 慈海雲茫泛石舟

  누가 이런 즐거움이 인간에게 있는 걸 알까 誰知此樂人間在

  이 마음 인간 세상 밖에 떠 있게 하지 말라 莫使斯心世外浮

  남은 술에 차 향기는 굶주림 달랠 수 있으니 殘醑香茶飢可療

  뽕나무 아래서 하루 밤 묵는 게 해롭지 않구나 不妨桑下一宵留


47. 우(又) 4월 18일

  설악산 속의 옛 절 깊은데 雪岳山中古寺深

  노는 사람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서로 찾아오네 遊人擔文賴相尋

  술 한정 없으니 옥 병 기울려 마시고 酒無量飮壺傾玉

  시 읊는 소리 있으니 땅에 금을 던졌네 詩有聲來地擲金

  두 골짜기에 여울물 흐르니 바람이 소리 보내고 兩谷灘流風送響

  한 계단에 꽃 고요하니 달은 그늘에 머물렀네 一堦花靜月留陰

  그대에게 청하노니 힘껏 기어오름을 아끼지 말라 請君莫惜躋攀力

  맑은 흥취는 유연하니 짐짓 금하지 못하겠네 淸興悠然故不禁


48. 정자에 올라 읊조리다 4월 19일

  나막신 신고 신흥사 돌아가는 걸음 등등6)한데 神興歸屐步登登

  대(臺) 두 어 층에다 고각도 두 어 층 이네 臺數層高閣數層

  들 밖 맑은 구름 떠 있고 푸른 건 나무인데 野外淡雲靑者樹

  돌 사이에서 흐르는 물 얼음보다 차네 石間生手冷於氷

  천추에 비파를 누가 진정으로 사모하는가 千秋點瑟誰眞慕

  한 곡조 거문고 타는 솜씨 그대 또한 능하다네 一曲牙琴子亦能

  밤마다 서쪽 봉우리엔 외로운 달 떠 있는데 夜夜西峰孤月在

  나머지 회포엔 초당의 스님 생각나네 餘懷可憶草堂僧


6) 등등(登登) : 힘을 쓸 때 내는 소리. 어영차.

49. 의상대(義相臺)에서 놀다 6월 28일

  의상대가 오봉의 머리에 우뚝 섰는데 一臺屹立吾峰頭

  신선 발자취 밟으며 이르니 십주에 가깝네 躡到仙踪近十洲

  시상은 수중에서 밝은 달 떠 오름이고 詩思水中明月出

  세정은 하늘 밖 흰 구름 이 떠 있음이네 世情天外白雲浮

  서방 금은 불을 두려워 하니 때는 역년을 맞이했고 庚金畏火時迎曆

  낮에 차 끊이는 연기 나니 손님이 누각에서 내려오네 午茗和煙客下樓

  청한한 우리들의 흥취 알려고 한다면 欲識淸閑吾輩趣

  모래톱에서 기(機)를 잊은 갈매기한테 물어보라 問諸沙上忘機鷗


50. 밤에 낙산사에서 읊조리다. 같은 날

  바다 안개에 산 남기 일어 밤 아직 맑지 않은데 海霧山嵐夜未淸

  뽕나무 밑에서 자며 나의 인생 깨우쳤네 宿來桑下覺吾生

  니우7)는 달 물고 어느 곳에 머물렀는가 泥牛含月留何處

  불조는 숲에서 우니 정이 있는 듯 하구나 佛鳥啼林似有情

  만흥한 시편은 두자미와 같고 謾興詩篇同子美

  스스로 거문고와 술 즐기니 도연명 이라네 自娛琴酒是淵明

  천옹은 나의 배회하는 뜻 혐의 하는데 天翁嫌我徜徉意

  때문에 처마 끝으로 보내니 새벽에 비 소리 들리네 故送詹端曉雨聲

7) 니우(泥牛) : 진흙으로 만든 소. 옛날에 이것을 만들어 입춘 전날에 제사지냈음.

51. 영랑호에서 노는 운에 차운하다. 같은 해 8월 일

  좋은 경치 구경함에 어찌 꼭 높은 누각에 오르겠는가 探勝何必上高樓

  바닷가에서 놀며 구경해도 흥취 다 걷우지 못한다네 近海游觀興不收

  산 빛은 붉은 색으로 물든 데다 연기 저물녁에 피어오르고 山光凝紫烟其暮

  여덟 경치 응당 더함은 동국여지도의 아름다움 이고 八景應添輿誌美

  네 명의 신선 이미 나타나니 도가의 그 사람이라네 四仙已著道家類

  취한 뒤라 선방에선 시 짓기 마쳤는데 醉後禪房詩寫訖

  다시 한가로이 나막신 신고 방주로 향하네 更拕閒屐向芳洲



52. 영랑호(永郞湖) 보광암(普光庵)의 유도회(儒道會) 운에 차운하다.

  을유년 4월 일

  환연한 유교의 도 긴 봄 돌아오니 煥然斯道復長春

  잠겼던 광채 드러나 날로 더욱 새롭네 闡發潛光日益新

  장한 뜻으로 누가 천하를 돌아다니며 백성 취할까 壯志誰環天下轍

  궁한 음은 과일 속의 씨는 없애지 못한다네 窮陰不剝果中仁

  깊은 골짜기서 부름은 꾀꼬리 벗 찾음이고 幽谷喚來鶯是友

  평평한 모래톱에 우뚝 선 갈매기 사람 같구나 平沙抑立鷺如人

  단란한 이 모임 진실로 우연이 아니니 團欒此會誠非偶

  들 늙은이 이웃 찾는 것 보다 낫다네 猶勝追尋野老隣


53. 학정(鶴亭) 상량문(上梁文)

  원래 가문에 재물이 모였는데 다시 부지런히 그것을 헤아리고 길이 사모하여 가문의 명성을 이어받았으며 학은 정자에서 날아 춤추는데 저 허공으로 올라가 아름다운 이름을 처마의 편액에다 남겼다. 모든 사람의 의논한 바를 따라 그 성공을 아뢴다.

  그윽하게 본 정자를 생각해 보건대 사려함이 깊어 세상 사람들이 존중하는 까닭이다. 하루가 못되어 정자가 완성되었으니 동으로부터 남쪽으로부터 서쪽으로부터 북쪽으로부터 와서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림자를 측량하기 위해 표준이 되는 나무를 세웠으니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 아무 때에 하였다. 훨훨 나는 정자의 모습은 새가 나는 것과 같은데 다시 선조의 기업 계승함이 성대함 보겠고 이에 느릅나무 대신 소나무 심었으니 더욱 선비들이 많이 모임을 기뻐한다. 집과 방 때맞추어 지었으니 이에 잘못되지 않았으며 규성은 하늘에 나타났으니 그것이 서서히 올바르게 되었다. 이롭고 곧음으로써 건넜으니 실은 동인(同人) 괘(卦) 해당되고 저 집을 세웠으니 아마도 대장(大莊) 괘(卦)를 취한 것이다. 누가 귀신의 역사를 만들어졌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이는 하늘이 아끼고 땅이 비밀로서 숨겨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입으로 노래하는 절창은 영중의 높은 가락을 본 것이며 눈을 씻고 봄은 오하의 구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풀이 스스로 향기로워 사향노루 찾아오고 꽃은 말하지 않았으나 나비가 날아왔다. 이어서 정자 수리함은 다 후손들이 잘 계승하는 것이고 시 읊고 술 드는 이 훌륭한 선비들이다. 두 어 칸의 거문고와 책 있는데 푸른 들에 있는 집은 깨끗하고 아홉 구비 흐르는 샘물에서 한가롭게 주옹이 노는 모습 보고 있다.

  만약에 설악산은 서쪽에서 높이 솟았는데 대대로 내려오는 기업과 더불어 융성하고 창해는 동쪽에서 넓은데 복된 전토와 같이 창대하다면 비로소 세계 속의 신령스런 지경을 보게 되어 초연히 물외의 신선이 사는 곳이 되는 것이다. 봄에 뜰에 풀이 가득하니 주렴계의 의사를 늘 보는 것이고. 달이 오동나무 난간에 비치니 요부의 기상을 다시 보는 것이다. 세상에서 어쩌다가 다시 관찰함은 정풍과 변풍의 차별이고, 서경의 대부분의 연혁은 고문과 금문의 유무인 것이다. 그러므로 뜻이 있어 창시의 공 이루었고 도모하지 않았지만 새로 도모하는 계책에 동참하였다. 자리를 펼쳐놓고 성대한 모임 열었으니 모두 규칙을 지켜 아름다운 처마에 걸려져 있다. 산천은 이 때문에 빛을 발하고 바람과 달도 이에 흥취를 도와준다. 난정에서 3월 3일 날 짝지어 읊조림은 어찌 우군의 즐거움뿐이겠는가. 등왕각의 9월 9일의 잔치는 염공의 놀이뿐만이 아니다. 경치를 끌어다 보며 멀리서도 흠모하여 춤추며 칭송한다. 비 때맞추어 내리고 바람도 때맞추어 부니 임금님의 힘이 뭐 필요하겠는가. 관청에 일 없고 마을에도 일 없으니 백성의 마음은 절로 편안하다.

  사방 들에서 농악소리 울려 퍼지니 앉아서 농사는 천하의 대본이란 소리 듣고 한 지역의 문화는 바다 오른쪽의 앞길에서 본다네. 칭송함은 주나라 시와 같고 축원함은 기주를 말하는 것과 같다. 날 길하고 때도 좋아 상량식하기에 아주 좋은 날 이고, 아버지 인자하고 자식 효도하니 세업의 아름다운 규칙 전한다. 7위의 말 열거하여 모든 사람의 칭송 돕는다. 아랑위 대들보 동쪽에 포치하니 낙산사의 산이 푸른 하늘의 지주가 된다. 춤추는 학은 어느 해에 날개를 아래로 드리웠는가. 익연한 정자 위로 붉은 해 솟아난다. 아랑위 대들보 남쪽에 포치하니 현산은 멀리 있는데 맑은 아지랑이 띠고 있다. 전조의 왕적을 묻지 말라 이미 선천에 소속되어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아랑위 대들보 서쪽에 포치하니 비선대의 빛이 발친 밑으로 들어온다. 한 마을 영정에서 문학을 높임은 당년의 직하재에게 사양하지 않는다. 아랑위 대들보 북쪽에 포치하니 오직 청대의 운애의 빛 있을 뿐이다. 정자를 빙 둘러있는 터는 앞이 대부분 확 트였는데 무릇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아랑위 대들보 위에 포치하니 밤에 빛난 별빛 드는데 붉은 휘장 드리웠다. 자손 대대로 교육할 때에 앞으로 기대됨은 응당 한량이 없다. 아랑위 대들보 아래에다 포치하니 세업을 닦아 순일한 복 많이 받는 것이다. 깊고 깊은 학문의 바다로서 공 이룸 아뢰는데 문과 질이 빈빈하여 화사함과 질박함으로 나뉜다.

  엎드려 원하건대 대들보를 올린 뒤에는 동량이 견고하여 별과 산처럼 편안해지소서. 일천 문과 일만 길로 다투어 오는 가운데 이며 한 조상에 일백 자손들이 계승해 온 때이다. 홀로 이지러지지 않고 문맥을 숭상하고 길이 교체됨이 없이 무인의 발자취 접한다.

  인가 조병승은 짓다.

  강릉군 주문진읍 교항리에 살다.


54. 학무정의 서문

  천하 고금의 물성의 청초하고 고결한 것을 헤아려 보건대 그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을 열거 한다면 반드시 생각해 보지 않고 매화와 학 이라고 다 같이 말한다. 이 매화는 심는 것이고 학은 나는 동물로서 같은 동류가 될 수 없는데 서로 같은 류가 되는 것은 기운이 가깝기 때문이다. 시경과 서경에서 영탄하고 찬미한 것을 보면 나무에 달려있는 매실, 으슥한 못에서 우는 소리, 국에 쓰임과 음지에서 운다고 했으니 어찌 다른 새들이 용납될 수 있으며 경훼부(經卉部)의 비익조(比翼鳥)와 비방(媲芳)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그러나 매실은 솥의 국에서 맛을 취할 뿐만 아니라 찬 꽃의 맑은 향기는 속세의 티끌을 초월하는 표본이 된다. 학은 진실로 그 먼 하늘가에서 울어 일깨어 줌을 사랑하는데 또한 감동된 데다 화락하고 깃털로 훨훨 날으며 춤추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옛날 사람의 경우에 징험해 보건대 임화정의 소영암향(踈影暗香)의 시구의 모든 매화나무 가지를 눈으로 바라보고 푸른 언덕의 눈이 가득하고 달 빛 밝음을 읊조리며 매화가 핀 정신과 양숙자(羊叔子)의 몽동(氋氃)을 익히는 것과 소지원(蕭知遠)의 무학(舞鶴)의 편은 개략적으로는 볼 수 있지만 모두 매학(梅鶴)의 성능을 다하지는 못 하였다.

  나의 벗 매곡 선생이 정자를 도산(道山)의 남쪽에다 지었는데 기이한 경관이 뛰어났다. 매곡의 사람됨은 행실이 깨끗한 데다 덕화를 입어 시속의 더러운 때가 묻지 않았고 찬 얼음과 단단한 옥처럼 맑아 한 점의 티끌도 없었으니, 시원스러운 것이 주렴계의 광풍(光風) 제월(霽月)의 마음과 같았다. 시가 청초함은 동야(東野)의 골격이 나솟은 것이요 문장이 깔끔함은 태사(太史)의 기운이 기특한 것이다. 이는 마땅히 매화와 같이 맑은데 맑은 것은 매화 뒤에 있고 학과 같이 깨끗한데 깨끗한 것은 학의 앞에 있다. 청진과 고결의 뛰어난 것으로써 절정에 이른 것은 사람과 매화와 학이 셋으로 나뉘어 우뚝 솟았으니 즉 매화와 학을 아울러서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이다.

  매곡이 일찍이 나를 맞이하여 정자에서 술 들었는데 난간에 기대어 가리키는 곳 돌아보니 맑은 물줄기 서쪽에서 흘러내리고 숲 속의 산기슭은 보일락 말락 한다. 아홉 굽이 물은 꺾어 돌아 흐르고 높이선 바둑판을 둘러쌌으며 앞에는 넓은 들이 펼쳐 있고 소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렸으며 나무꾼이 부르는 노랫소리 남기 속으로 울려 퍼지고 농사꾼의 노래는 들판에 가득하며 석양의 그림자 쳐지고 돌아오는 구름은 서로 잇는다. 해 떨어지자 노을 일어나고 달빛 비취며 물이 올라온다. 멀리로는 외로운 집오리에 더디 날아가는 기러기가 하늘가에 아득히 떠 있고 가까이로는 국화 그늘에 매화 그림자가 창에 가득히 너풀거리며 춤춘다. 고목에다 흐르는 샘물이 있고 둥지에 학은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려고 소나무 끝에서 날아든다. 이에 벗인 매곡은 분향하고 주역을 집어 들고 한 편을 두루 보는데 마음이 맑음에 뜻이 이해되어 신체가 묵묵히 깨쳐지니 스스로 그가 춤추고 뛰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그제서야 매화나무가 고와서 발 틈으로 엿보는데 학이 날개를 펼쳐 훨훨 날아 내려와서 평상 앞에 섰으니 기미(氣味)가 있는 듯 하여 운치가 서로 느껴졌으므로 만났을 뿐이다. 따라서 그 일을 차례대로 하여 정자 동쪽 벽에다 쓴다.

  정축년 7월 16일에 형산(馨山) 박장희(朴長喜)는 서문을 짓다.


55. 학무정기(鶴舞亭記)

  도천(道川)의 위에 구곡(九曲)이 있는데 제 2곡이 가장 우뚝 솟아 돌무더기가 산을 이루어 완연히 두 물 사이에 있다. 형체는 하나의 작은 배와 같지만 바람을 만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름하여 학무대(鶴舞臺)라 한다. 조금 평평한 곳으로 올라가면 흙이 약간 덮여 있는데 소나무와 잣나무가 빙 둘러 나있어 매우 푸르러 완상할 만 하다. 만약에 그 좋은 경관으로서 말한다면 멀리로는 설악산의 시원한 기운을 머금었고 평면적으로는 창해의 넓은 파도를 뜰 수 있으며 그 밖의 나머지로서 자질구레한 것은 다 형용할 수 없다. 대(臺)의 남쪽에 예전부터 맑은 못이 있었는데 그 못 사이가 절로 막혀 있었다. 지난여름에 다시 물길을 터놓아 물이 드나드니 어찌 하늘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겠는가.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고왕고(高王考)인 경암공(儆庵公)께서 산수에 숨어 지내셨는데 한가할 때에는 지팡이 짚고 여기에서 머뭇거리며 소요하였으니 술을 들어도 어지러워지는 데까지는 마시지 않았고 즐거워도 황홀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다. 편안한 마음은 맑은 데다 고상하고 정은 깊고도 원대하여 남한테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날과 백 년 뒤에도 풍운(風韻)이 아직도 남아있고 이에 훌륭한 여러 자손들이 날마다 정자에 올라갔으므로 더욱이 근원을 찾는 정성을 보태고 마침내 정자를 짓는 계획을 세웠으니, 다만 힘써 일하느라 경황이 없었지만 스스로 그리고 옮겨가게 된 지는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금년 봄에 화수회(花樹會)를 열어 여럿이 함께 도모하고 또한 마을의 도움을 힘입어 연장으로 깎아서 이에 정자를 지어 그 공을 이에 이루었다. 그 선조를 이어받고 후손을 넉넉하게 해 준 도리가 아울러 실행되어 어긋나지 않았으니 선조를 생각하고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아! 뒷날 사람들은 잘 인도해 나가서 바꾸지 말고 이어서 지붕을 잘 씌워 이 정자가 썩게 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구곡(九曲)도 또한 그 명성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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