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한문학 속의 속초

관리자
202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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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世謂安常爲俊永郞徒 不之審也 永郞之徒 唯眞才 繁完等知名 皆亦不測人也(詳見別傳)

  『三國遺事』, 栢栗寺

  세상에서 안상은 영랑의 무리 중에서 뛰어났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영랑의 무리에는 오직 진재, 번완 등이 이름이 알려졌으며 모두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자세한 것은 별전을 보라)


2. 山水之勝 當以江原嶺東爲第一... 次則杆城花潭 如月墮淸泉 永郞湖 如珠藏大澤 襄陽靑草湖 如鏡開畵 此三湖奇勝 亞於上三湖 我國入道 俱無永湖 惟嶺東六湖 殆非人間所有三一浦 則湖中心 有四仙亭 則新羅永郞 述郞南石行 安祥(詳)所遊處 四人結爲友不仕 遊山水間 世傳得道仙去 湖之南石壁有丹書 卽四仙題名 丹痕漬壁 風雨不 千有餘年 亦可 訝也

  『擇里志』四, 山水勝地

  산수의 경치가 좋은 곳은 마땅히 강원도 영동지방이 제일이다... 다음 간성의 화담은 달이 맑은 샘에 떨어지는 것 같고 영랑호는 큰 못에 구슬을 감춘 것과 같고 양양의 청초호는 그림경대의 거울을 연 것 같다. 이 세 호수의 기이한 경치는 위의 세호수에 다음 간다. 우리나라 팔도에 모두 호수가 없으나 오직 영동의 여섯호수는 인간이 있는 곳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삼일포의 호수 가운데 사선정이 있다. 곧 영랑, 술랑, 남석행, 안상의 화랑이 놀던 곳이다. 네 사람이 벗이 되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산수간에 노닐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도를 얻어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호수의 남쪽 돌벽에 붉은 글씨가 있다. 즉, 네 선인의 이름을 적은 것이다. 붉은 흔적이 벽에 물들어서 천 여 년이 지났으나 바람과 비에 씻겨 나가지 않았으니 또한 이상하다.


3. 初八日泛舟永郞湖 日晩不得窮源

  『臥遊錄』

  초팔일 영랑호에서 뱃놀이를 하다.


4. 四仙峰有小亭

  『臥遊錄』

  사선봉에 작은 정자가 있다.


5. 越泰定丙寅 今知秋部學士朴公淑 自關東杖節而還謂余曰 臨瀛鏡浦臺 羅代永郞仙人所遊也

  『謹齋全集』

  세월이 지나 태정 병인년(1326)에 지금 전법사의 학사로 이는 박숙이 관동의 안무사로 있다가 돌아와 나에게 말하기를 강릉의 경포대는 신라 때 영랑이라는 신선이 놀았던 곳이라고 하였다.


6. 昔永郞之遊是臺也 必有所樂焉 今朴公所樂者 其得永郞之心歟 朴公命邑人 構是亭 邑人咸曰 永郞遊是臺而未聞有亭宇

  『謹齋全集』 鏡浦新亭記, 근재사상연구회,1994

  옛날에 영랑이 이 언덕에서 놀았는데 반드시 즐기었다. 이제 박공이 즐기기는 바로 영랑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박공이 고을 사람들에게 정자를 짓도록 명하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영랑이 이 언덕에서 놀았으나 정자가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7. 永郞浦泛舟 영랑호에서 뱃놀이

  平湖鏡面澄 평평한 호수는 거울처럼 맑고

  滄波凝不流 푸른 물결은 엉기어 흐르지 않네

  蘭舟縱所如 아름다운 배는 마음대로 흘러가고

  泛泛隨輕鴻 물위에 뜬 기러기 빨리도 따라 오네

  浩然發淸興 맑은 물결 크게 일어나니

  沂洄入深幽 물을 거슬러 깊은 곳으로 들었네

  丹崖抱蒼石 붉은 절벽에 푸른 바위 서 있고

  玉洞臟瓊洲 아름다운 골에는 고운 모래톱 펼쳐 있네

  循山泊松下 산을 돌아 푸른 솔 밑에 머무르고

  空翠凉生秋 울창한 푸른 기운 서늘한 가을을 주네

  荷葉淨如洗 연꽃잎은 씻은 듯 아름답고

  蓴絲滑且柔 순채나물은 미끄럽고 부드럽네

  向晩欲廻棹 해 저물어 뱃머리 돌리려 하네

  風烟千古愁 좋은 경치 천고의 수심을 내네.

  古仙若可作 옛날 영랑의 선도 다시 올 수 있다면

  於此從之遊 여기서 그를 따라 놀겠노라

  『謹齋全集』


8. 八月始四日 北行 泛永郞湖 8월 4일 영랑호에서 뱃놀이

  暮雲半卷山如畵 저녁구름반 걷혀 산은 한 폭의 그림 같고

  秋雨新晴水自波 가을비 개니 물결이 저절로 일어나네

  此地重來難可必 이 곳에서 반드시 다시 오기 어려우니

  更聞船上一聲歌 다시 배 띄워 노래한 곡조 듣노라

  『謹齋全集』


9. 留贈巫山張玉娘 무산 장옥랑과 작별하녀 주어주다.

  天吼山前草正芳 천후산 앞에는 풀이 정히 꽃다운데

  永郞湖畔落花香 영랑호 호숫가 지는 꽃이 향기롭네

  畵舡載得春歸去 놀잇배에 봄을 가득 싣고 돌아가니

  吹徹鸞簫向帝鄕 옥퉁소 드높아 하늘나라로 향하는 구나

  許筠, 『惺所覆砧藁』


10. 雙成湖

  自官門北距四十里周二十里湖之形勝優於永郞湖昔置萬戶營泊兵航今廢

  『關東邑誌』

  관문으로부터 북쪽 사십리에 있으며 주위가 이십 리이다. 호수의 경치는 영랑호보다 뛰어나다 옛날에 만호영을 설치하여 두고 병선을 정박했지만 지금은 없다.


11. 永郞湖

在郡南五十里周三十餘里汀回曲巖石奇怪湖東小峰半入湖心有古亭基是永郞仙徒遊賞之地 於此平湖鏡面澄 滄波凝不流 蘭舟縱所如 泛泛隨輕鴻 浩然發淸興 沂洄入深幽 丹崖抱蒼石 玉洞臟瓊洲 循山泊松下 空翠凉生秋 荷葉淨如洗 蓴絲滑且柔 向晩欲廻棹 風烟千古愁 古仙若可作 於此從從之遊 暮雲半卷山如畵 秋雨新晴水自波 此地重來難可必 更聞船上一聲歌
李穀詩安相情懷黃鶴月李生止白鷗波重來此地誠難必空聽關東一曲歌

  『新增東國輿地勝覽』

  군 남쪽 오십 리에 있다. 주위가 삼십여 리인데 물가가 구비쳐서 돌아오고 암석이 기괴하다. 호수 동쪽 작은 봉우리가 절반쯤 호수 가운데로 들어갔는데 옛 정자터가 있으니 이곳은 영랑 신선무리들이 놀며 구경하던 곳이다.


12. 永郞湖

在郡南五十五里周回二十里浸入山谷不見端俔汀回渚曲 石錯峙水中亦孤石如點星東麓一丘近湖中松林周 日光不漏可列坐百餘人古有亭今廢世傳永郞遊賞之地故以爲名焉

  『關東邑誌』, 『關東誌』, 『江原道杆城郡邑誌』

  군 남쪽 오십 리에 있고 주위는 이십 리이다. 산골짜기로 들어가 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데 물가에 구비쳐서 돌아오고 굽은 바위는 높은 언덕에 아름답게 놓여 있다. 물속에도 돌이 외롭게 별처럼 널려 있다. 동쪽 산기슭 한 언덕이 호수 속으로 들어오는데 주위가 소나무 숲은 우거져서 햇볕도 새어나가지 못한다. 이 곳에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시를 지으며 놀았다. 옛날에는 정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세상에 전하기를 영랑이 놀면서 감상하였던 곳이기에 영랑호라고 이름하였다.


13. 羽衣初綰白雲邊 흰 구름 가에 신선의 옷을 엮고

  匹馬東來意渺然 동쪽 땅에 홀로오니 뜻은 묘연하구나

  日落沙明湖水闊 해진 뒤 밝은 모랫벌의 호수는 넓고

  不知何處問神仙 어디서 신선을 물어야 할지 알 수 없구려

  李尙質-成均館 敎理, 『太白의 詩文』, 江原日報社


14. 行盡長松沙岸東 모래사장 동쪽 솔밭을 지나면

  澄淸潚泗竟無風 깨끗하고 맑은 곳에 바람도 없네

  明湖一曲眞如畵 호수는 맑아서 한 폭의 그림 같고

  雪嶽千峰倒鏡中 설악의 천봉이 거울 속에 잠겼네

  歷遍金剛萬二岫 금강산의 만이천봉을 두루 돌아서

  海棠千里踏鳴沙 명사 천리 해당화 길 밝고서 왔네

  永郞湖畔初開眼 영랑 호반에 서니 시계가 열려

  手拍瓊壺浩浩歌 술동이 장단 치며 호호가를 부른다.

  李世龜-李恒福의 曾孫이며 洪洲牧師, 『太白의 詩文』, 江原日報社


15. 屛張萬岫海開門 험한 봉이 에워싸도 바다 길은 열렸고

  沙阜成臺衆妙存 모래언덕 대에는 묘한 이치가 있네

  漢將廻時三日哭 한장이 돌아갈 때 사흘을 울었다고

  至今猶記契玄言 지금도 전하는 기록이 남아있네

  金昌翕, 『太白의 詩文』, 江原日報社


16. 平湖淨色明如鏡 맑은 호수 평활하여 거울 같고

  雪岳晴峰擁作屛 설악의 맑은 봉은 병풍처럼 둘렀네

  笙鶴千年消息斷 신선이 간지 천년이지만 소식이 없고

  空留片日照滄濤 허공의 조각달만 푸른 파도비치네

  李夢奎, 『太白의 詩文』, 江原日報社


17. 安相淸懷黃鶴月 안축은 황학의 달 보고 맑은 회포 풀었는데

  李生行止白鷗波 나는 흰 물새 떠 있는 물결보고 가던 길 멈추었네

  重來此地誠難必 이곳 다시 오기 참 어려워

  空聽關東一曲歌 허전한 마음 안고 한 곡조 관동노래 듣는다.

  李曲의 詩, 『江原道誌』


18. 학무정

鶴舞亭

在郡北三里 雪嶽山下 道川上有九曲 第二曲 石塊成岑兩水間 故鶴舞臺 泉石佳麗 松竹環衛 西望達摩如將軍戴胄 東望滄海如仙人開帳 吳儆菴辰光逍遙放此 後孫潤煥追慕起亭

  『江原道誌』

  군 북쪽 3리에 있다. 설악산 아래 길을 따라 흐르는 시냇가에 구곡이 있는데 두 번째 구비에 있다. 바위 무더기가 두 물줄기 사이에 봉우리를 이루어 학무대라고 이름하였다. 샘과 바위가 아름답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주위를 들렀다. 서쪽으로 달마봉을 바라보면 마치 장군이 투구를 쓴 듯하고 동쪽으로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마치 신선이 휘장을 열어젖힌 듯하다. 경암 오진광이 이곳에서 소요하였는데 후손 윤환이 추모하여 정자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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