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피난민 문화 창출

관리자
202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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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절 피난민 문화 창출

  속초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은 피난민 문화가 차지한다. 피난민은 해방기에 3,561명, 동란기에 48,722명이 유입되었으며, 이 가운데 함경남도가 92.9%를 차지하고 다음으로 북청·영흥·단천·홍원·이원군 순이다. 이들은 대부분 함경남도 해안출신으로 1·4후퇴 때 가장 많이 월남했으며, 1·4후퇴 후 휴전시, 6·25전쟁 발발시 등이다. 이렇게 모여든 피난민들은 난민이라는 집단 개성을 유지하여, 경제활동과 사회문화활동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어로작업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갖게 됨으로써 난민사회는 안정감과 결속력을 다져 나갔다.

  속초 피난민의 민속은 피난민의 정착과 삶이라는 남북분단사 내지 난민사와 일정한 연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해방이후 북한 공산치하를 탈출한 피난민과 6·25전쟁 때 월남한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사에 의해 월남하였고, 난민취락을 형성하면서 집단으로 생활하였다.

  초기에 속초에 정착한 피난민들은 이질적인 언어관습과 행동양식, 생활풍습, 문화방식 등으로 토착주민들과 융합되기가 힘들었으나 전쟁 중이거나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복구기간에 피난민 모두가 힘을 합쳐 함께 살아야 한다는 명제 하에 대집단을 형성함으로 심한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더구나 이들 대부분은 주거지가 형성되지 않은 공지나 해변가에 임시로 집을 짓고 살면서 직접적인 마찰을 피했으며, 곧 통일이 되어 공산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면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일념으로 일시적인 거주 방식을 취했다.

  경제활동의 경우 대부분 이들이 생업으로 종사했던 어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동명동과 청호동 일대에 한 두 가구가 모여들기 시작함에 특색이 강한 독자적인 ‘난민의 섬’(Refugee island)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속초에 거주한 북한 피난민들은 나름대로 전통을 고수하면서 한편으로 토착민과 일정한 민속 문화적 교섭을 가졌다. 그러한 예로 북청도청(北靑道廳)을 만들어 사자놀음을 하면서 지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정서적 갈등을 해결했으며, 이를 통해 결집하면서 강인한 생활력을 바탕으로 경제적인 소득을 올리며 주변 이웃과 공유하면서 원만한 적응을 이루었다. 또한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자녀교육에 매진하여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면서 지역에 공헌하였다.

  이러한 실정에 비추어 보면 속초 피난민과 그들의 민속은 지금까지 피난 1세대가 아직까지 생존해 있으므로 시대적 특수한 상황을 바탕으로 현실적으로는 복합적 민속문화의 양상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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